다케우치 유코 (竹内 結子) 이야기 1부
[음악] 당차고 사랑스러운 이미지. 청순남보다는 이쁘고 아름답다는 느낌이 더 강한 여배우. 아마도 기무라타쿠야와 나카야마미오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친숙한 일본 배우가 아니었나 싶은데요. 하지만 이제 두 번 다시 그녀의 모습은 볼 수가 없죠. 이제 하늘에 별이 된 그녀. 다케우찌 육구. 오늘은 그녀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여배우 중 하나였고 개추구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만큼 연기력도 인정받은 배우였죠. 다케우치 육고는 1980년 4월 1일 일본 사이타마연의 우라와 씨에서 태어났어요. 흥미로운 건이 세상에 그녀의 이름이 알려진 건 영화나 드라마 쪽이 아니었죠. 그녀의 이름이 알려진 거는 현재 재무성의 전신에 해당되는 대장성의 광고 영상이었어요. 당시 영상을 본 연예인 관계자들은 그녀가 스타가 될 상이라는 걸 한 눈에 알아보는데 곧바로 연애계 관계자들은 그녀를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15살의 나이의 연애계에 대비한 그녀는 밝고 당찬 모습 그리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는 여배우가 되죠. 하지만 데뷔 이전의 그녀의 삶은 드라마에서의 밝은 모습과 달리 무척 어둡고 불행했어요. 사실 육고의 이야기를 하려면 데뷔 이전에 그녀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은데 데뷔 1년 전이든 1994년이었죠. 그녀의 어머니가 지병이던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됐는데 사실상 이때부터가 불행의 시작이었죠. 아버지가 재운을 하게 되는데 그 재운이 문제였죠. 그 아버지의 재운 상대가 어머니의 살아생 절친인데다가 문제가 또 있었어요. 그 새어머니에게도 자녀가 셋시나 있었는데 그게 다 아들이었다는 거예요. 이게 뭐가 문제냐 할 수 있는데 낯스던 남자들과 갑자기 한 집에 살게 된 것도 굉장히 혼란스럽고 어색한 상황이잖아요. 거기에다가 당시 사춘기이다 보니까 이게 엄청 불편했겠죠. 여기에 그녀를 더 힘들게 했던게 바로 그녀의 아버지였어요. 그녀의 아버지는 육꼬를 전혀 헤아리지 못했죠. 육꼬가 재원녀의 자녀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자 오히려 육꼬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손직검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이야기들 7, 80년대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쓰이던 주제 아닌가요? 하지만 불행이도 이건 그녀가 처한 현실이었고 당시 그녀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불편한 장소였던 거죠. 아버지의 재운 이후 사실상 그녀는 거의 모든 시간을 할머니 댁에서 보냈다고 해요. 바로 그 시기쯤에 오디션을 보게 된 건데 중학교를 졸업하는 애였던 1995년 히라축쿠에서 스카웃이 됐다고 해요. 그때 그녀가 이런 발언을 하죠. 제가 필요한 존재라고 여겨지는게 그저 기뻤습니다. 당시 오디션 때 실제로 했던 말이에요. 그리고이 기회는 사실상 그녀에게 단순히 연예인이 되는 것뿐 아니라 당시 자신이 처해 있던 그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돌파구였던 셈이기도 했죠. 데뷔초 그녀는 각종 CF로 커리어를 조금씩 쌓는 걸로 시작해서 배우로서는 1996년 드라마 신 목요일의 괴담 사이보그에서 조연으로 데뷔를 한 이후 국내에서도 리메이크되어 화제가 됐던 공포 영화죠. 영화 링.이 이 영화와 함께 영화 이노센트 월드에서 각강을 받기 시작했는데 사실이 두 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밝고 상냥한 육구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약간 괴리감이 들 수도 있는데 오히려 육구를 스타로 거듭나게 한 건 밝은 이미지보다 의외로 이런 어두운 이미지 때문이었어요. 육구가 데뷔할 당시 그런 그녀의 심경을 대변해 주는 상징적인 일이 있었는데 한 인터뷰에서 15세의 어린 나이에 대비한 소감을 묻자 그녀는 그 어린아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충격적인 발언을 하는데 저희 집안은 일반적인 집안이 아니라서 전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어요. 그래서 전이 어깨에서 무조건 열심히 일해야 돼요. 돌아갈 곳이 없다니 충격적이면서도 어찌 보면 참 씁쓸한 말이기도 하죠.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육고는 그저 조연 배우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러던 1999년이었죠.이 작품은 그녀가 데뷔 이후 첫 주연을 맡았던 작품인 동시에 사실상 그녀를 스타덤에 올려 놓는 작품인데 바로 드라마 아스카였죠.이 이 작품은 사실 개추구 드라마가 아닌 오전 8시에 방영되는 아침 드라마였어요. 무척 이은 시간에 방영되는 아침 드라마였는데도 불구하고 평균 시청률 25%를 찍고 엄청난 대박을 치며 큰 성공을 거두는데이 작품은 오디션을 두 번이나 떨어지고 나서야 겨우 주연을 맡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고 해요. 아스카가 150회에 가까운 장편 드라마이다 보니까 그만큼 주연을 따내기가 어려운 작품이었던 거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바로 주연 배우가 된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국직한 작품들에서 히로인 역할을 담당하면서 사실상 주연배우 못지않는 포지션을 담당하게 됐고 당시 그녀가 히로인으로 출연했던 작품들은 모두 시청률 20%를 넘기는 작품들이었죠. 드라마 대릴 사이에서 상처가 있지만 항상 웃는 히로인을 연기하면서 기존에 점점 어두웠던 이미지에서 밝은 이미지로 점차 변모하기 시작해요. 이렇게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 잠시나마 어둡고 우울했던 자신의 과거를 잊을 수가 있었어요. 육코가 점차 미소짓는 여배우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쯤이 아니었나 싶어요. 이렇게 히로인으로 입질을 다졌다면 그녀가 본격적인 주연으로 입질을 다진 건 2002년 런치의 여왕이었는데 아마도 국내의 한국 팬들에게 그녀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건이 작품 때문이지 않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목처럼 요리에 관한 드라마예요. 그녀가 연기한 주인공 나츠미는 실제 육고와 약간 오버랩이 되는 캐릭터이기도 했는데 그녀가 실제의 유코처럼 부루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점과 꿋꿋하고 늘 밝은 미소를 잃지 않으려던 점이었다는 거죠. 평소 상냥한 성격의 소유자지만 또 한편으로는 불리를 보면 참지 못하는 항상 오른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캐릭터인데이 나침이라는 캐릭터는 극중 남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캐릭터이기도 하죠. 여담으로 극중 오므라이스를 먹는 장면이 아주 매력적인데 그 덕분에 당시 먹방 움짤로도 자주이 장면이 쓰이곤 했어요.이 런치의 여왕이라는 작품은 그녀를 당당히 개추구의 여왕으로 발도듬하게 만드는 작품이 되죠. 어 90년대후의 여왕은 제 생각엔 나카야마 미오였어요. 근데 2000년대 개추구의 여왕은 바로 다케우치 육고였다고 생각해요.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히라축쿠에서 캐스팅되어서 데뷔를 한 것도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겠네요. 대추구의 여왕으로서 그 절정에 달한 건 바로 당시 스매프의 멤버였던 기무라타쿠야와 호흡을 맞춘 드라마 프라이드였는데이 드라마는 시청률 35%를 찍으면서 그녀를 명실 상부한 일본의 톱스타로 자리매임하게 만드는 작품이죠. 이때를 계기로 해서 본격적으로 개추구의 여왕이라 불린 것뿐만이 아니라 스매프의 여인이라고도 불리게 되는데 스매프의 연인 그녀에게 이런 별명이 생긴 것이 사실 무리도 아니었던게 그녀가 작품을 함께 한 건 기무라타쿠야뿐만이 아니라 스맵의 멤버 다섯 명 중 무려네 명과 영화 드라마에서 호흡을 맞추는데 이건 스냅 입장에서도 가장 많은 수치라고 해요. 그중난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쿠산나기 치요 씨도 유코와 호흡을 맞춘 멤버인데이 당시 두 사람이 서로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있어요. 이때 인터뷰에서 6호의 한국어 실력도 볼 수 있는데 유창하다고는 할 수는 없었지만 뭐 그 정도면 제 생각엔 아주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드라마와 영화에서 전천으로 전성기를 누리는데 국내에서는 박케유치 육고하면은 바로 떠오르는 영화죠. 지금 만나러 갑니다. 국내에서는 사실상 다케우치 육고를 상징하는 작품이 아닐까 싶은데이 작품은 그녀에게 천당과 지옥을 함께 동시에 선사한 작품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Ah. [박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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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케우치 유코
